지옥 십대왕 중 다섯 번째 왕, 염라대왕(閻羅大王).
그가 관할하는 발설지옥(拔舌地獄).
이 글에서는 지옥의 구조와 죄의 유형, 그 상징성과 불교적 교훈까지 서사적으로 풀어낸다.
염라대왕과 발설지옥(拔舌地獄) — 말의 죄, 혀로 받는 심판
망자의 영혼이 죽은 지 35일째, 본격적인 대심판이 내려지는 지옥의 정점에 도달한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존재가 바로 염라대왕(閻羅大王)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죽은 자들의 혀가 마르는 이 왕은, ‘십대왕’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지옥의 심판자이다. 염라대왕은 말로 지은 죄, 곧 언어의 죄업을 심판하며, 이를 통해 발설지옥(拔舌地獄)에 죄인을 보낸다.
염라대왕(閻羅大王)은 누구인가?
염라대왕은 인도 불교의 야마(Yama)에서 유래한 존재로, 중국과 한국에서는 ‘지옥왕’ 혹은 ‘사자의 대왕’으로 받아들여졌다. 본래는 중생을 돕는 호법존(護法尊)이었으나, 민간에서는 점차 죽음 이후 영혼의 죄를 심판하는 냉엄한 판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법정은 중립적이고 공정한 재판장이지만, 동시에 진실과 거짓을 완벽히 꿰뚫는 통찰력을 갖춘 존재로 묘사된다. 염라대왕은 사후 세계의 중심에서 인간이 살아온 삶의 ‘말’ 하나하나를 되짚는다. 그 말이 살리는 말이었는가, 죽이는 말이었는가. 그 판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발설지옥이다.
발설지옥(拔舌地獄)
‘발설(拔舌)’이란 말 그대로 혀를 ‘뽑아내는’ 형벌이다. 발설지옥은 말로 남을 해친 자들, 즉 거짓말, 욕설, 중상모략, 이간질, 맹세의 위반, 선동과 날조 등 언어로 죄를 지은 자들이 끌려가는 곳이다.
이곳의 형벌은 다음과 같다:
- 지옥의 형리들이 긴 갈고리나 철겸(鐵鉗)으로 죄인의 혀를 강제로 끌어낸다.
- 혀를 산 채로 뽑아내고, 다시 돋아나면 또 뽑는다. 이 고통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 불덩이를 넣은 집게로 혀를 짓누르거나 태우기도 한다.
- 말의 죄가 무거울수록 혀는 길게 늘어지고, 소가 밭을 갈듯 천천히 바닥을 가르며 붉은 자국을 남긴다.
이러한 형벌은 단지 신체적 고통이 아닌, 말의 힘과 그 파괴성을 육체로 환원시키는 형상화다. 말이 칼보다 더 날카로울 수 있다는 경고가, 바로 이 지옥에서 현실이 된다.
어떤 자들이 발설지옥에 가는가?
염라대왕은 다음과 같은 ‘혀의 죄’를 심판한다:
- 거짓 증언을 하여 무고한 자를 해친 자
- 선동과 헛소문으로 사회에 혼란을 일으킨 자
- 뒷담화, 모략, 비방으로 타인의 평판을 무너뜨린 자
- 맹세를 어기고 배신한 자
- 욕설, 인격 모독, 언어폭력을 일삼은 자
- 지식이나 정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조작한 자
불교에서는 이러한 ‘구업(口業)’을 특히 경계하며, 몸(身), 말(口), 뜻(意) 중에서도 말의 죄는 중생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장 널리, 빠르게 퍼뜨린다고 본다.
혀의 업보 — 왜 ‘말’이 죄가 되는가?
사람은 말로 사랑을 나누고, 말로 사람을 죽인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에너지를 지녔으며, 그 여운은 칼이나 주먹보다 오래 남는다.
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구악업(四口惡業)’을 금기시한다:
- 망어(妄語) – 거짓말
- 양설(兩舌) – 이간질
- 악구(惡口) – 욕설과 험한 말
- 기어(綺語) – 꾸며낸 말, 쓸데없는 수다
이 네 가지는 모두 발설지옥의 원인이 된다. 특히 양설과 악구는 공동체와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죄로 간주되어 더 무겁게 처벌된다.
민간신앙과 불화 속의 염라대왕
염라대왕은 대심판관의 위엄을 갖춘 존재로서, 불화나 지옥도에서 장엄한 관복을 입고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좌우에는 비서 격인 업경대(業鏡臺) 혹은 비망록(備忘錄)이 있고, 죄인의 일생을 낱낱이 비추어 판결한다.
염라대왕의 심판은 언제나 객관적이며 냉철하다. 거짓으로 감출 수 없으며, 후회와 눈물로도 돌이킬 수 없다. 말로 쌓은 업은 말로 씻기지 않으며, 오직 그 죄의 무게만큼 고통으로 돌려받게 되는 것이다.
교훈
발설지옥이 주는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말은 업이다. 너의 혀는 칼날이 될 수도, 다리가 될 수도 있다.”
혀로 남을 베고 해친 자는 결국 자신의 혀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염라대왕은 바로 그 혀의 업을 직시하는 자이며, 말로 지은 죄가 얼마나 뿌리 깊고 위험한지 깨우치게 하는 판관이다.
불교는 말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업의 매개체로 본다. 그렇기에 말 한 마디를 아끼는 것이 수행이며, 침묵이 곧 자비가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맺음말
말은 날아가지만, 그 파장은 오래 남는다.
염라대왕은 죽은 자의 말 한 마디까지 되새기며, 그 말이 누구를 살렸고 누구를 죽였는지를 묻는다.
발설지옥의 철갈고리는 단지 혀를 뽑는 형벌이 아니다.
‘말의 책임’을 뽑아내는 가혹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