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역사와 전쟁의 뿌리: 동서 분열과 정체성의 기원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전쟁의 무대가 아니다. 이 땅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국의 경계였고, 문화의 용광로였으며, 정체성을 끊임없이 질문받아온 공간이었다. 지금의 전쟁을 이해하려면, 그 깊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1. 키예프 루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기원
9세기 말, 바이킹계 루스인과 동슬라브족이 지금의 키이우(과거 키예프)를 중심으로 국가를 세운다. 이것이 바로 키예프 루스(Kyiv Rus’)다. 유럽 동부에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한 이 국가는 슬라브 문화와 정교회 전통의 출발점이 되었다.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키예프 루스는 붕괴했고, 후계 국가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오늘날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모두 키예프 루스를 자신들의 역사적 기원으로 주장하고 있으며, 그 해석에는 민족 정체성과 정치적 정당성이 얽혀 있다.
2. 코사크와 페레야슬라프 조약

몽골의 몰락 이후, 우크라이나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오스만 제국, 크림 칸국 등 여러 제국 사이에 놓이게 된다. 이 불안정 속에서 등장한 것이 자치와 독립을 지향한 코사크들이다. 그들은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 군사·농민 공동체를 이루며 자율적인 생활을 추구했다.
1654년, 외세의 압박 속에 코사크는 모스크바 공국과 페레야슬라프 조약을 체결하며 군사 동맹을 맺는다. 이는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향력 확대의 기점이 되었고, 양국 간 역사 해석의 분수령으로 남는다.
- 러시아: “삼위일체 민족의 재통일”
- 우크라이나: “정치적 생존을 위한 일시적 연합”
3. 제국의 경계에서: 정체성의 이중성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에 의해 분할된다.
- 동부와 남부: 러시아의 지배 아래 산업화가 진행되고 러시아어 사용이 확산됨.
- 서부: 오스트리아 지배하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언어가 살아남음.
이 시기부터 우크라이나는 언어, 문화, 정체성 면에서 이질적인 기억을 가진 두 지역으로 분리되어 살아가게 되며, 이 동서 분열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4. 혁명과 전쟁, 그리고 소련의 그늘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 우크라이나는 잠시 독립을 시도하지만,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에 의해 병합된다. 이후 소련의 일원이 된 우크라이나는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공화국 중 하나가 된다.
- 1932–33년 홀로도모르(Holodomor):
스탈린의 집단농장 정책으로 350만~700만 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인위적 기근에 의한 집단학살’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이를 ‘정책 실패에 따른 비극’으로 본다.
- 제2차 세계대전:
독일과 소련 양측의 전장이 되었고, 민간인 피해는 막대했다.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은 나치에, 일부는 소련에 협력하면서 내부 분열도 발생했다.
- 1954년 크림반도 이관:
흐루쇼프가 러시아 혁명 300주년을 기념해 ‘우정의 제스처’로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로 이관한다. 당시엔 큰 반향이 없었지만, 훗날 분쟁의 핵이 된다.
5. 독립과 오렌지 혁명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우크라이나는 90% 이상의 찬성으로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초대 정치 지도자들은 대부분 구소련 체제 출신으로, 부패와 권위주의 통치가 지속되었다.
2004년,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오렌지 혁명’이 발생하고, 서방 지향의 유셴코가 재선거 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6. 유로마이단과 전쟁의 시작
2013년,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협정 체결을 거부하고 러시아와의 협력을 선택하자,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 이는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불리며, 정권 퇴진으로 이어진다.
이에 반발한 러시아는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이어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분리주의 무장 세력이 활동을 개시한다. 이 무력 충돌은 사실상 현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이었다.
7. 2022년 이후: 전면 침공과 새로운 역사
2022년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며 정권 교체와 서방 확장의 차단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 국민은 단결된 저항을 보여주었고, 서방은 경제적·군사적으로 전폭적 지원을 제공한다.
이 전쟁은 단순한 국경 충돌이 아니다.
- 천 년 전 키예프 루스 정통성을 둘러싼 싸움이며,
- 동서로 나뉜 우크라이나가 하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역사적 투쟁이기도 하다.
마무리하며: 우크라이나는 누구인가?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단일하지 않았다. 제국의 경계에서, 서로 다른 언어와 기억, 수많은 타협과 저항의 역사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정의하고 재구성해왔다.
지금 그들은 다시 묻는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이 질문은 어쩌면, 21세기 세계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인지도 모른다.